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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를 읽고...
북스토리 서평 | 2010/01/03 11:37
2010/01/03 11:37 2010/01/03 11:37
프리메이슨은 신비주의의 한 하위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진형준교수의 책을 통해 알게 된 프리메이슨은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상당한 깊이와 외연을 지닌 단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해 6월 신비주의에 대해 글을 쓸 필요가 있어 여러 책을 뒤지다가 신비주의가 나름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은 물론 몰이해와 고난의 역사를 지닌 개념임을 알았다. 당시 나는 신비주의란 결국 종교성으로 수렴되는 개념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나의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듯 프리메이슨의 기본은 “종교성에 있다”(84 페이지)는 말을 했다.

프리메이슨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중세 카톨릭이 자행한 피의 진압이나 음모, 세속 일반의 오해, 비의성, 정통과 이단 등의 개념이 아니며 모차르트, 괴테, 벤자민 프랭클린, 프랭클린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 에세네파, 초현실주의자들, 상징주의자들, 낭만주의자들 등이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인물 또는 분파라는 사실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잠재해 있고 열려 있는 신비적 체험 가능성일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엄밀한 의미에서의 프리메이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121 페이지) 그말이 내게는 반갑게 들린다. 왜일까? 그만큼 프리메이슨에 얽힌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무게 및 파란과 시련의 역사가 예사롭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는 역사적 의미나 종교적 상징이 상상력을 적지 않게 자극한 무게감 넘치는 작품이다. 프리메이슨을 비롯해 모든 신비주의집단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신을 숭배하는 세속 일반의 행태와 달리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자기 안에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다.(59 페이지) 라마 크리슈나, 헤르메스, 오르페우스, 모세, 피타고라스, 석가모니, 플라톤, 그리고 문제(?)의 예수까지 깨달음을 얻은 자들 또는 선각자라 할 사람들의 이름은 한 둘이 아니다.

저자도 거론했지만 프리메이슨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그것이 다분히 불교와 상당히 친연적(親緣的)이라 느꼈다. 한편 저자는 다른 종파들과 세력 다툼을 벌이던 초기 기독교 - 단 하나의 유일한 종교가 아닌 - 시기에는 신비주의적 요소가 있었다는 말을 한다.(86 페이지) 하지만 기독교가 세력을 넓혀 세계 종교가 되자 신비를 정통 교리에서 지우고 신비주의적 무리들을 몰아냈다는 사실을 말하며 그렇게 사라져간 카타리파와 템플기사단, 그리고 그노시스주의자들을 예로 열거했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차이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제도권이란 단어로 수식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신비주의에 속하는 단체 가운데 12세기 중반 프랑스 남부 카타리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카타리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카타리파는 12세기 중반 프랑스 남부 카타리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단체로 조물주에 의한 우주 창조 자체를 부인한 극단적 집단이었다. 그들은 완전하고 순수한 조물주가 창조한 세상에 어떻게 악이 존재하느냐는 생각에 따라 지금의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는 가짜라는 주장을 내세워 피의 세례를 받은 세력이었다. 자유로운 석공(Free stone mason)이라는 뜻을 가진 프리메이슨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4세기이다.(37 페이지)

수련생, 숙련공, 거장(지부장)의 세 계급으로 이루어진 프리메이슨에 입단하고자 하는 사람은 비밀을 엄수하고 예절을 지키고 기본 공부를 해야 하는 의무를 졌다.(27 페이지) 프리메이슨은 건축을 우주 건설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겼다. 즉 신의 건축에 참여하는 것이란 의미이다. 프리메이슨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다. 성서(역대 하 3장)에 등장하는 이야기로부터 기원하는 것으로 그것은 자신의 치세 둘째 해를 맞아 모리아 산에 신전 - 신전을 영어로 temple이라 하는데 tem은 바로 세속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 을 지을 것을 명령함과 아울러 친구인 두로의 왕에게 신전을 건축할 최고의 거장을 보내줄 것을 요구한 솔로몬왕으로 인한 것이다.

프리메이슨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히람 아비프는 그렇게 두로의 왕에 의해 급 파견된 거장이다. 그런데 신분 상승을 통해 더 많은 보수를 누릴 것을 계획한 숙련공 15명이 히람을 위협하다가 거부당하자 히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프리메이슨은 신입회원이 의식(儀式)을 치르면서 ‘복수, 복수, 복수‘라고 외치는 프리메이슨 지부들이 상당수 생겼고 이는 세속인들로 하여금 프리메이슨이 피의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이라는 오해를 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 복수는 히람을 살해한 자에 대한 위해가 아니라 히람의 권능을 되살린다는 의미라고 저자는 주장한다.(50 페이지)

프리메이슨의 기본 준칙은 모두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앞에서 불교적 의미의 깨달음에 대해 말했지만 피타고라스 교단의 교리야말로 불교와 흡사하다.(33 페이지) 윤회사상이 그렇고 통과제의를 통한 깨달음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중세 프리메이슨이나 현대 프리메이슨이나 모두 정통 기독교와 아주 복잡한 관계를 이루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52 페이지) 저자는 제 1부 ‘영원한 프리메이슨’에서 템플 기사단에 대해 언급한다.

십자군 원정이 한창이던 1119년 예루살렘 순례 행렬을 이슬람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조직된 템플기사단 - 고작 9명으로 구성된 기사단 - 이 1307년 프랑스의 필립 4세에 의해 대학살을 당한 것을 솔로몬 성전에서 가져온 비밀 때문에 학살당한 것이 아닐까, 란 추측을 한다.(49 페이지) 교황과 관련해 중세 유럽 카톨릭과 유혈, 음모, 비밀, 복수 등의 단어를 연결시킬 부분이 아닌가 싶다.

저자도 언급한 바이지만 현대의 프리메이슨은 대체로 철학적 사색집단의 의미를 지닌 단체들이다. 단순히 프리메이슨 사교(社交)집단이 있는가 하면 신비주의 전통과 배치되는 실증주의, 사회주의, 인본주의적 이론들로 무장한 현대의 프리메이슨단들이 있기까지 하다.(98 페이지) 무상(無常)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를 타락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의를 체험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처럼 자신들의 모임을 신비주의와 다른 의미로 장식할 자유도 있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은 지난 세기 미국의 정치와 종교 제도를 전복시킬 목표를 가진 위험한 단체로 지목(19 세기)되었으며,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오명도 썼다.(18세기) 그리고 전체주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20세기) 음모론이 위세를 떨치는 우리 시대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음모론이 위세를 떨치는 시대에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프리메이슨은 엄청난 오명을 지닌 단체가 아닌 고급스런 친목 단체로 활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리메이슨에 대한 책 읽기를 마치는 자리에서 나는 자기와 다른 타자를 인정하는 이성적 사고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맹목적 믿음에 빠지지 말 것을 아울러 주문한다. 한편 저자는 음모론은 이 세상에 비밀스런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우리의 믿음이 만들어낸 또 다른 음모(198 페이지)라는 말을 한다. 이것이 가장 최선의 결론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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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를 읽고..
책 읽은 후 | 2009/12/20 15:28
2009/12/20 15:28 2009/12/20 15:28
최근 몇년에 걸쳐 일본인들이 쓴 책들을 몇 권 읽었다. 그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시하라 유미의 <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이다. 의학박사인 저자 이시하라 유미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체온은 충분히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체온이 올라가면 암세포조차 증식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체온이 1도 낮아지면 병에 대한 면역력이 30% 떨어지고 1도 올라가면 5~6배 올라간다는 것이다.

인체 최대의 발열 기관인 근육이 약해지면 체열이 생산되지 않아 혈액 속의 노폐물을 연소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혈액이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근육이 약해지면 혈액 속 당분 이용이 저조해짐으로써 당뇨병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충분한 온도의 체온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나 근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나 혈액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말은 모두 하나로 수렴되는 말일 수 밖에 없다.

이시하라 유미는 하루 8잔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일반적인 처방도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주문한다. 그는 지나친 양의 물은 몸속에서 수해(水害)를 일으킨다는 말을 한다. 색다르게 여겨지는 이시하라 유미의 주장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암종(癌腫) 역시 혈액을 정화하기 위한 저항의 결과가 아닐까, 란 말이다. 이시하라 유미는 혈액이 더러워졌을 때 나타나는 신체 반응을 여럿 나열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발열과 식욕 부진 - 저자는 과식을 체온을 떨어트리는 주요 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즉 하나의 정교한 기계인 우리 몸은 과식으로 떨어진 체온을 식욕 부진으로 치유하려는 것이다. - 을 일으키는 염증은 더러워진 혈액을 자연치유 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염증과 암 말고도 더러워진 혈액을 되돌리려는 신체 반응들은 여럿 있는데 그것들은 구토, 설사, 발진, 동맥경화, 고혈압, 혈전, 출혈 등이다. 현대 의학을 전공한 이시하라 유미는 기(氣)를 언급하기도 했다. 아니 기와 더불어 정체(停滯)라는 말을 사용했다. 혈액 정체로 인한 병, 수분 정체로 인한 병, 기 정체로 인한 병 등...혈액 정체로 인한 병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고혈압과 뇌졸중, 암 등이다. 그리고 수분 정체로 인한 병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관절염이다. 또한 기 정체로 인한 병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우울증, 신경증 등이다.

우리는 흔히 아침 식사를 영어로 breakfast라 한다. fast란 단식이란 말인데 저자는 우리는 매일 단식을 한다는 말을 한다.(71 페이지) 사실 우리는 저녁 식사 후부터 시작해 수면 및 아침 식사 전까지 대략 12시간 이상 음식을 먹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은 아침 식사는 단식이 끝난 후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기에 위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의 주장이 조반석죽(朝飯夕粥)을 주장한 어떤 한의학자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저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을 나열하였는데 그 중 특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수분을 많이 섭취하면 혈액이 맑아진다는 것과, 우유는 얼마든지 마셔도 된다는 것 등이다. 저자는 많은 양의 수분 섭취는 혈액의 총량을 증가시켜 심장의 부담을 불러 일으키고 그 결과 고혈압이 악화될 수 있다는 말을 한다.(73 페이지) 최근 우유가 인체에 아주 좋지 않다는 내용을 담은 티에리 수카르의 책 <우유의 역습>이 출간되었는데 이시하라 유미는 티에리 수카르와 달리 동양인은 서양인과 달리 우유를 소화시키는 락타아제 효소가 적기에 ‘우유 = 건강 음료’라는 등식은 조금 성급한 것이라 말하는 데에서 논의를 맺으며 냄새가 싫다거나 마시면 배가 아픈 사람들까지 억지로 마셔서는 안된다는 선에서 주장을 마쳤다.

한편 식초(食醋)의 효용성과 과량의 소금이 끼치는 부정적 결과를 굳게 믿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소금은 체열을 상승시키며 식초는 체열을 떨어트린다는 말을 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주장을 믿어야 하는가? 내키지도 않는데 몸에 좋다고 억지로 먹지는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우울증 역시 체온 저하와 관련이 크다고 한다. 저자가 <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에서 언급한 저체온증으로 인한 갖가지 폐해들을 보면 우물쭈물(fumble)하다가 중얼중얼(mumble)거리고, 비틀거리다가(stumble) 결국 고꾸라진다(tumble)는 저체온증(hypothermia)에 걸린 등반가들에 관한 책 내용이 생각난다. 저자는 <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 외에 <생강이 여자 몸을 살린다>는 책을 썼다. 왜 남자 몸은 아니고 여자 몸일까? 책을 직접 읽으면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있겠지만 저자는 <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를 통해서도 체온을 높여주는 생강 요리들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사실 나는 여름에도 따뜻한 음식과 물을 드시던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 도반이었던 한 여자분은 차가운 물을 마시면 세포가 깜짝 놀란다는 말을 했었다. 이미 6년 전의 일이지만 기억은 선명하다. <女科經綸>이란 책에 ‘영의십남자(寧醫十男子), 막의일부인(莫醫一婦人)’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남자 열명을 치료하기보다 여자 한명을 치료하기가 더 어렵다는 뜻으로 이시하라 유미는 여성들이야말로 남성에 비해 근육이 적은 데다가 몸을 차갑게 하는 지방이 많기 때문에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이시하라 유미가 쓴 <생강이 여자 몸을 살린다>를 직접 읽으면 그 내력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몸이 따뜻해야 몸이 산다>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마음의 온도를 높이면 몸의 온도도 높아진다는 챕터가 있어 관심을 끈다. 몸의 온도가 낮으면 우울증이 걸린다는 주장이 마음에 끼치는 몸의 영향력을 나타낸 것이라면 마음의 온도를 높이면 몸의 온도도 높아진다는 주장은 몸과 마음의 균형에 대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온 = 생명력’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물론 몸과 마음에 두루 적용되는 생명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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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가오루의 <밤의 물리학>을 읽고...
책 읽은 후 | 2009/08/05 16:34
2009/08/05 16:34 2009/08/05 16:34
내가 물리학과 천문학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 두 학문이 종교적인 성격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다케우치 가오루는 <밤의 물리학>이란 저서에서 바로 그 부분에 대해 언급을 했다. 그는 현대 이론 물리학과 우주론은 극히 종교적으로 보인다는 말을 하며 생성과 소멸, 무로부터의 탄생, 시간이 허수인 세계, 우주와 반우주 등의 이슈들에 대해 동양의 음양오행설의 주장과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52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밤의 물리학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이론으로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는 주류들과 달리 갑자기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논리를 찾아보기 힘든 생각을 출발점 삼아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다.(21 페이지) 책을 어느 정도 읽은 후 저자 사진을 보았는데 그의 주장 때문인지 그는 도인의 풍모를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나이트 사이언스라는 명칭에 걸맞게 저자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비근한 예를 활용해 맛깔스럽게 설명해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이론을 못 마땅해 한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반대되는 척력에 해당하는 우주 상수를 방정식에 넣었다가 우주 팽창이 사실임을 알게 된 후 우주 상수를 포기하며 자신의 실책에 마음 아파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 많은 우주학자들이 암흑 에너지를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인생유전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정설이 아니라면 배울 가치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 대해 시기에 따라 정설도 변하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또한 저자가 간결하되 핵심을 놓치지 않는 설명을 하는 것을 보며 유능한 물리학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우주배경복사를 우주의 모든 방향으로부터 오는 같은 온도의 전파라고 설명한 대목은 단연 돋보인다. 특히 정상우주론(定常宇宙論)이 우주가 팽창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팽창에도 불구하고 늘 같은 밀도와 구조를 유지함을 뜻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나의 오류를 고쳐 주기에 충분한 설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스티븐 호킹이 자신의 허수 우주론(虛數宇宙論)의 귀결에 따라 우주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최초부터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 것은 이해하기가 극히 어렵지만 물리학자들조차 반 정도가 허수 우주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저자의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저자가 합리적이고 열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은 “이단으로 취급받는 학설을 지지자가 적은 비주류 학설이라 여기는 게 좋겠다”는 말을 통해 충분히 확인 할 수 있는 바이다. 우리는 흔히 진공(眞空)을 무(無)의 상태로 이해하고 있지만 저자에 의하면 진공에서 물질과 반물질이 생멸을 거듭한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무에서는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지만 불확정성이 존재하는 양자론에서는 무엇이든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 무엇이든에 우주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기묘함, 반직관성 등 때문에 물리학은 어렵지만 매력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분야이다.

어찌 보면 저자는 랩을 하는 힙합 뮤지션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예컨대 “우주의 시작이 허수 시간이라면 우주의 시작은 점이 아닌 둥근 구(球)일 것“이라는 호킹의 주장에 대해 ”사실 모든 것을 안개 속에 묻어 버리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대목이 그렇다.(63 페이지) 저자의 설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초끈 이론에 대한 설명을 들 것이다. 초끈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아직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배경만은 알아야 할 것이다. 초끈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그 이론이 나온 배경은 무엇일가? 그것은 크고 무거운 것을 다루는 중력 이론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을 다루는 양자역학을 통합해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론이다.

전하(電荷) 문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전하 사이의 거리가 0이 되면 작용하는 힘은 무한대가 된다고 한다. 초끈(超끈) 이론은 전하를 크기가 없는 점 입자로 보는 것이 문제이기에 학자들은 점을 잡아늘여 선(=끈)으로 만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나온 이론이다.(121 페이지) 소립자가 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두 전하는 끈의 길이보다 가까워질 수 없고 무한대의 힘 역시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초끈 이론이 나온 것은 이 세계의 존재 방식이나 움직임을 기존 이론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이 많은 까닭이다. 내 단견(短見)이지만 초끈 이론은 막다른 길목에 다다른 궁여지책이라 보는 것은 지나칠까?

<밤의 물리학>이 다룬 키워드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물리학의 SF化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분명 이론물리학자들과, 이론에는 관심 없고 실체에만 관심을 갖는 실험물리학자들의 상반된 입장을 볼 수 있다. 나는 물론 두 진영과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그저 난삽하다는 이유로 초끈 이론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일반 독자이다.

<밤의 물리학>의 독특한 점은 ‘과학자도 인간인걸‘이라는 챕터가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물리학자들을 우주의 존재 이유에 대해 천착하는 부류와 우주 작동 원리, 그리고 이론과 실험의 일치 여부에 초점을 두는 부류로 나누었다. 무신론자인 스티븐 호킹이 독실한 로만 카톨릭 신자인 아내와의 사상적 갭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한 사연 등을 소개했다. 저자가 말했듯 일반인이든 전문가이든 호킹의 우주론을 이해하기는 어렵다.(162 페이지) 나이트 사이언티스트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존 호건이다. 나는 어느 면 그에게서 나와의 사상적 친연성을 느꼈다. 과학과 신비주의 사이에서 방황했다고 알려진 사람이니 말이다.

현대 철학이 열정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 되었듯 현대 물리학 역시 관념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듯 보인다. 관념의 세계란 순수 이론의 세계를 말한다. 물리학이 순수 이론의 세계에 몰입해 있다는 말은 바로 SF의 길로 치닫는 물리학의 위상을 알려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현대 금융세계가 형이상학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흥미를 유발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밤의 물리학>은 정녕 비근한 예를 들어 물리를 쉽게 설명한 책이다. 나이트 사이언스라는 규정도 재미 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케우치 가오루가 생성과 소멸, 무로부터의 탄생, 시간이 허수인 세계, 우주와 반우주 등의 이슈들에 대해 동양의 음양오행설의 주장과 같다는 말을 했듯 최근 출간된 <끝없는 우주>에서 폴 스타인하트와 닐 투록은 이론 물리학은 많은 고통과 개인적인 고행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동양 철학과 유사하다는 말을 했다.(<밤의 물리학> 165 페이지) 나는 현대의 이론 물리학에 매달려 있는 학자들의 승리(?)를 기원한다. 내 경우 물리학과 수학은 철학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빼든 카드이지만 그 자체로 흥미로운 부분과 난해한 부분이 두루 어우러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논문이나 방정식 풀이와 무관하기에 <끝없는 우주>와 같은 난해한 책보다는 <밤의 물리학> 같은 쉬운 책에 더 마음이 간다. <밤의 물리학> 같은 쉬우면서도 유익한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앞으로는 조금 덜 대중적인 ‘밤의 물리학’ 부류의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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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문화를 읽다>를 읽고...
북스토리 서평 | 2009/06/06 17:51
2009/06/06 17:51 2009/06/06 17:51
 

문화라는 말의 외연(外延)은 참 넓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화는 지극히 난해하거나 깊이가 깃든 개념은 아니기에 지금껏 그 단어의 의미나 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 하지는 못했다. 문학평론가나 미술평론가, 영화 평론가 등 개별 분야의 평론가가 있는가 하면 다소 막연하고 포괄적인 문화평론가들이 하나 둘씩 눈에 띄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동녘에서 나온 <철학, 문화를 읽다>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작업 성과를 묶어낸 옴니버스형식의 책이다. <철학, 문화를 읽다>의 13명의 저자 가운데 한 분인 연효숙이란 분이 공동 필진으로 참여한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지식하우스刊)를 검색해 보고 나는 그 책이 진리, 가상, 환경, 과학 등의 큰 제목하에 다양한 주제들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편제(編制)는 <철학, 문화를 읽다>와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내 책상 위에는 <철학으로 과학하라>를 펴낸 웅진지식하우스에서 나온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가 놓여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생명이라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전문적이며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웅진지식하우스에서 펴낸 책이라 해도 <철학으로 과학하라>가 다소 산만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는 생명에 대한 외연이 좁은 대신 구체적인 논의가 돋보인다.


넓은 외연을 가진 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에서 드러나듯 <철학, 문화를 읽다>는 군자에서 시민까지, 제 2의 성에서 사이보그까지, 편의점에서 백화점까지, 태초의 말씀에서 다원주의까지 등을 다룸으로써 문화라는 단어의 넓은 외연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철학으로 과학하라> 역시 네 개의 큰 주제에 따라 글들을 구성해 놓았지만 외연이 넓다.


<철학, 문화를 읽다>에서 내 관심을 많이 끈 부분은 제 2의 성에서 사이보그 선언까지, 편의점에서 백화점까지, 증기기관에서 KTX까지, 태초의 말씀에서 다원주의까지 등이다. 전술했듯 <철학, 문화를 읽다>는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 만큼 일관적인 하나의 주제에 따라 묶인 책이 아니다.


그럼 <철학, 문화를 읽다>를 수식할 수 있는 키워드들은 무엇일까? 급격한 변화(가족에서 디지털 촌수까지), 첨단 과학기술이 낳을 새로운 미래상(제 2의 성에서 사이보그 선언까지), 이율배반적 난맥상(386에서 촛불 문화제까지), 욕망의 허구성(편의점에서 백화점까지), 환경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이해관계(새만금에서 대운하까지) 등이다.


<철학, 문화를 읽다>의 장점은 각 장(章)의 끝에 ‘함께 보는 영화’ 또는 ‘함께 읽는 책’, ‘생각해볼 문제‘, ’참고 문헌‘ 등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볼 문제‘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참고 문헌은 저자가 글을 쓰며 참고한 책인데 ‘함께 읽는 책’ - 사실 이는 ‘함께 읽을 만한 책’ 또는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란 뜻이다. - 에서 소개된 책이 한권씩이기에 아쉬운 생각이 든다.


제 6장 ‘편의점에서 백화점까지‘와 제 11장 ’단성사에서 CGV까지‘는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길들여져 필요 이상의 또는 과시적 소비를 하지만 개성적이고 규모 있는 소비를 한다고 착각하는 소비자들이 다루어졌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나는 요즘 한창 나오는 행동경제학 책들을 이 장(章)들의 ’함께 읽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보고 논의를 전개하는 경제학과 달리 인간을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놓고 논의를 전개하는 학문이다.


제 9장 ‘증기기관에서 KTX까지’와 제 10장 ‘태초의 말씀에서 다원주의까지’는 논의를 더 전개해 단행본으로 묶어도 좋을 책으로 보인다. 시공간 체험의 의미와 신학적인 함의를 지닌 태초는 충분히 무게 있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철학, 문화를 읽다>를 통해 배운 것들은 참 많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계는 가능한 여러 세계들 중 신(神)이 만든 최선의 세계라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담긴 난점(?)을 이제야 알았다는 점이다.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신의 전능성과 악(惡)의 공존을 문제삼아 이 세계는 최상의 세계가 아니라 생각하거나 믿음에 의거해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전폭 수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인 이강서교수에 의하면 “이 세계가 가능한 최상의 세계라는 주장은 세계가 결코 향상될 수 없음을 함축하는데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도덕 판단들과 상충된다“(215 페이지)는 것이다. 이를 이제야 깨달은 것은 변화에 초점을 두고 사태를 보지 못한 결과이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람들 아니 소비자들은 출처가 모호한 욕망을 자신들 고유의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것이라 착각하거나 대형차를 타고 다니며 자신이 성공했다고 착각(232 페이지)한다는 글을 읽으며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라는 시인 이윤림의 모토를 떠올렸다. 이는  현대의 특징을 속도의 파시즘이라 진단한 비릴리오의 주장이 담긴 제 9장 ‘증기기관에서 KTX까지’의 주제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델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인들은 왜 그토록 속도의 광풍에 휩쓸리는가라는 말을 한다. 사람들은 가속의 삶에 휩쓸려 급기야는 남들보다 더 빨리 여가를 즐기려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지만 체제의 무서운 관성력과 구속력을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철학, 문화를 읽다>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 힘들었지만 친숙한 일상을 철학적인 문제의식으로 해부한 책이다. 물론 유익했다는 말을 빼놓으면 안될 책이다. 어느 시점에선가 일독에 값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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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짜리 방의 행복
하루하루 | 2009/06/06 11:34
2009/06/06 11:34 2009/06/06 11:34
어제 봉서재(鳳棲齋)라는 현판(懸板)이 걸린 시골의 한 작은 약국을 보았다. 약국 정면에 유약국이라는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으니 봉서재(鳳棲齋)라는 이름은 약국 주인의 취향에 따라 걸린 부기(附記)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봉서재(鳳棲齋)란 봉황의 수컷이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고색(古色)을 띤 이름이지만 기원은 충북 괴산의 의성 김씨 문중의 재실이다. 재실(齋室)이란 시조나 중시조(中始祖)의 묘소 또는 지파(支派)의 회전(會奠) 근처에 세워진 건물을 뜻한다고 한다.

재(齋)라는 단어가 들어간 집 가운데 유명한 곳으로는 시인 장석주선생의 수졸재(守拙齋)와 작가 정찬주선생의 이불재(耳佛齋) 등이 있다. 법을 뜻하는 한자가 다양한 것처럼 집을 뜻하는 한자도 참 다양하다. 글자에도 위계 서열이 있는 것 같다. 집을 뜻하는 한자 가운데 헌(軒)이 있는데 재(齋)와 함께 고급스러운 이름을 지시하는 단어로 쓰이는 것 같다. 내 취향으로는 헌(軒)보다는 재(齋)가 더 고급스럽게 여겨진다. 지난 5월 24일 呂선생님이 주신 책과 책장을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과 함께 방에 들여 놓고 나니 제법 완성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는 내 서재(書齋)의 이름을 무엇이라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서재라 했지만 잠을 자고 컴퓨터를 하고 음악도 듣는 곳이기에 책만을 위한 공간이라 할 수는 없으니 서재란 이름은 내 생각이 싹트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관념 속의 이름이다. 음향 기기는 그 값이 어떻든 고생(苦生)이라는 말과는 무관하다. 음악 감상실에 고급 음향 기기를 갖추는 과정이 힘들지언정 음악을 듣는 것이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반면 독서 특히 삶이나 세계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는 독서는 힘겨운 암중모색의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독서력이 대단한 사람이 있다면 이해의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겠고 그로 인해 즐기는 독서를 할 수 있겠지만 고통스러운 세상의 진실로부터는 즐거움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단언해서는 안되겠지만 처세술이나 재테크용 독서에는 그리 많은 책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수백권의 장서(藏書)를 넘긴 사람의 서재는 힘겨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전시장이다. 어제 일과 후 林자매님과 금요 모임을 위해 가는 차 안에서 呂 선생님이 주신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권 가량의 책을 받았다는 내 말씀에 林자매님은 呂선생님이 언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느냐며 놀라셨다. 呂선생님께 받은 책은 분류해 읽을만한 것 100여권만을 선별하고 나머지는 폐기했다. 呂선생님은 나에게 자신과 나는 정서적으로 같은 類의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呂선생님은 林자매님과 종교나 사상 면에서 많이 다르시지만 呂선생님은 林자매님의 말은 무조건 믿으시고 林자매님 역시 呂선생님의 넓은 마음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林자매님은 내가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당신께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나는 呂선생님과 정서적으로 가까운 만큼 林자매님과도 사상적으로 동류라고 믿는다. 林자매님은 呂선생님과의 전화 통화에서 ‘박~~씨에게 2~3년 동안 오디오를 듣게 하신 것은 아주 잘한 선택이예요’란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박~~씨 사람 참 좋지요?’란 말씀도 하셨다.

최근 출간된 천진, 현현 스님의 <지리산 스님들의 못말리는 수행 이야기>에는 ‘한 평짜리 방의 행복’이라는 챕터가 있다. 스님들은 당신들께서 거하시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순리라 생각하신 것 같다. 한 평의 작은 공간으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것은 절제하고 감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쇄소응대(灑掃應待)의 소박하고 부지런한 삶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쇄소응대(灑掃應待)란 물로 닦고 쓸어 방을 늘 깨끗하게 하고 웃어른의 부름이나 물음에 응하여 상대하는 부지런하고 공손한 생활을 의미한다. 스님들의 한 평의 작은 방 같은 서재에서 나는 나를 경책(輕責)하는 좋은 책들을 꾸준히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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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서 고치는 관절염>을 읽고...
책 읽은 후 | 2009/06/01 08:04
2009/06/01 08:04 2009/06/01 08:04
지난 해 우리 나라의 2, 30대 관절염 환자수가 1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들이 앓는 관절염은 대개 과격한 운동이나 교통 사고 등의 외적 원인에 의한 연골 손상으로부터 비롯되는 질환이다. 무릎 연골 손상이 관절염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무릎 연골을 손상시키는 주된 요인은 무릎을 잡아주는 십자인대 파열이다. 나는 오래 걸으면 무릎 옆면이 뻐근하고 아팠었는데 최근 왼쪽 햄스트링에 이상이 생겨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먹으면서 고치는 관절염>이란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몇몇의 한의사들이 공동으로 쓴 책으로 관절염에 대한 실제적인 도움은 물론 동양의학과 자연, 그리고 자연을 닮았다는 소우주인 인체를 대하는 철학적 관점이 두루 반영된 책이다.

이 부분은 자신들의 책이 “일반인들을 위한 글이라기보다 선배가 먼저 알고 느낀 것을 후배(한의사)들에게 다독거리며 가르치는 기분으로 적어나”(7 페이지)간 작품이라 밝힌 저자들의 설명과도 상통하는 바이다.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삼라만상을 자연스럽게 볼 것을 주문한다. 어리석고 모자라는 듯한 심정 즉 약졸(若拙)의 심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이든 바보처럼 그냥 멍하게 바라봐서는 안되고 음양(陰陽)이라는 최소한의 이성적이며 철학적인 도구를 써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것이 인간 이성의 최소한의 개입(17 페이지)이라는 것이다.

지난 해 시월 천식 때문에 처음 뵙게 된 呂선생님은 나에게 삼계탕을 먹으면 지치고 힘들 때 기운을 낼 수 있다는 말씀을 몇 차례 해주셨다. 이는 음양이라는 도구를 써서 자연과 인체를 바라볼 것을 주문하는 저자들이 ‘기운이 가라앉고 상승(上升)의 의지가 빈약한 음인(陰人)이 상복하면 좋을 음식’으로 닭을 꼽은 것과도 상통한다. 저자들은 오장육부와 머리, 이목구비와 등, 배, 뼈, 팔, 다리 등의 순서로 차례를 잡은 <동의보감>의 편제를 예로 들며 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져온 다른 기관이나 장기 등에 높은 비중을 둔다.

우리 몸을 건축물에 비교하는 저자들은 칼슘이 콘크리트에 해당한다면 교질(膠質)은 철근에 해당한다는 말을 한다.(50 페이지) 관절을 강하게 감싸고 지탱시키는 인대와 힘줄(햄스트링은 오금 힘줄이다.)은 교질로 이루어진 섬유결합조직으로 우리 몸에 칼슘만 보충하는 것은 결국 철근 없이 콘크리트만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음을 알게 한다. 요즘은 자신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건강 양태가 천차만별인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저자들은 퇴행성 관절염의 원인을 노화(老化)가 아닌 약화(弱化)라 말한다.(54 페이지) 시대의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며 퇴행성 관절염이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 극복이 가능한 질환임을 인식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명명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퇴행성 관절염은 몸의 정기(精氣)가 약해 생기는 허증(虛症)으로 당연히 사법(瀉法)이 아닌 보법(補法)으로 고쳐야 할 질환이다.(87 페이지) <먹으면서 고치는 관절염>이란 책이 출간된 것이나 내가 그 책을 고른 배경은 현시대의 물질적 풍요(豊饒)와 맞닿아 있다. 저자들은 100세 이전에는 노화는 없고 약화만이 있을 뿐으로 노력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강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97 페이지) 강화의 근저(根底)에는 당연히 교질이 풍성한 치료용 음식들, 각종 운동 기구, 그리고 의료용 약제 등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몸이 지닌 자연 치유력 이상으로 위에서 말한 외적 요인들을 믿는다. 아니 그런 외적 요인들이 내 자연 치유력을 현실화할 것이라 믿는다.

연골은 무릎 통증과 직결되는 부분인데 우리의 연골 두께는 4mm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관절 주위의 근육을 강화한다면 얼마든지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점은 동양의학이 지닌 생각이기도 하다. 물론 교질이 충분히 함유된 음식을 함께 먹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먹으면서 고치는 관절염’이란 제목이 그러한 사정을 말해준다 하겠다. 교질은 관절 영양에 필수적인 젤라틴(콜라겐의 분해 산물)을 함유하고 있는 중요 구성성분이다. 저자는 교질이 풍부한 음식으로 돼지껍질, 돼지 족발, 홍어찜, 명태 대가리, 통째 먹는 멸치, 복어 껍질 등을 들었다. 사실 나는 지난 2007년 1월부터 생선은 먹는 채식을 실천해 오고 있다. “약해진 관절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식성을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138 페이지)고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생선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전술했듯 <먹으면서 고치는 관절염>은 실용적인 면과 사상적인 면을 두루 다룬 책이다. 군신좌사, 이감위군 등에 대해 새롭게 배웠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약의 제형(劑型: 구성 유형)이 탕(湯), 주(酒), 환(丸), 산(散), 고(膏), 단(丹), 정(錠), 편(片), 노(露), 상(霜), 교(膠), 차(茶), 국(麴) 등으로 다양하다는 것이다.(175 페이지) 물론 나는 저자들이 제시한 방법이 무릎 연골이 많이 닳은 사람들에게는 별 연관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채 책을 읽었다. 책을 고른 것이나 읽으며 느낀 바들에 지금의 내 상태가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의미있는 한의학 책을 만나 마음이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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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문화를 읽다> 서평단 모집
북스토리 서평단 모집 | 2009/05/20 18:07
2009/05/20 18:07 2009/05/20 18:07

124번째 책이야기 <철학, 문화를 읽다> _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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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토리 (http://www.bookstory.kr)

철학, 문화를 읽다 포토북 보기

◆ 서평단 모집기간 :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 모집인원 : 10명
◆ 서평단 발표일 :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북스토리 홈페이지 -> 서평마을 -> 서평단 공지사항 참조)
◆ 서평작성마감일 : 2009년 6월 14일 (책수령후 평균 2주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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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문화를 읽다 (동녘)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저자)
우리 일상의 다양한 영역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실천적인 관심에서 문화와 철학을 음미해보도록 구성
한 책이다. 주변의 다양한 문화 현상이 우리의 의식과 실천, 또 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근대적 인간, 인간관계, 페미니즘, 정치, 대중음악, 소비사회, 위생과 웰빙, 환경 위기, 공간 이동, 종교 문화, 가상과 현실, 전통문화 등 12가지 주제를 통해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군자와 시민(근대적 인간), 가족의 의미, 성과 페미니즘, 가상과 현실, 생활과 거리의 정치, 통기타와 컴퓨터 음악, 편의점과 백화점(소비사회와 욕망), 위생과 건강, 새만금과 대운하(생태학적 자연관), 시간과 공간, 한국의 종교 문화, 전통과 현대 등 이 책에 담긴 열두 주제를 철학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면서 문화에 대한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이해는 물론, 이 주제와 관련해 제기할 수 있는 철학적 문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이 책은 문화를 철학이라는 창으로 심도 있게 들여다본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이미 우리 속에 젖어 있는 전통, 가족과 성(性), 일상적으로 하는 소비행위, 사회생활, 교회에 가는 행동, 여행하는 습관, 그밖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투쟁 등 이런 일상생활을 통틀어 문화라고 보고, 그 문화를 철학적으로 성찰해나간다.

 

◆ 참가방법
1.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
2.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철학, 문화를 읽다 서평단 신청합니다."
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스크랩(복사, 카피)해서 꼭 올려주세요.

◆ 서평단 참가를 위한 준비
1.블로그와 홈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블로그 주소를 꼭 기재해 주십시오.
2.북스토리 회원가입시 집주소와 메일주소는 정확히 입력해 주십시오.
3.선정후 배송되는 주소는 가입시 기재한 주소로 도서가 배송됩니다.

◆ 서평단 선정기준
1.북스토리 회원
2.북스토리 ‘북스토리 서평’ 게시판에 글을 성실한 서평을 써 주신분(자유서평단 작성 참조)
3.작성한 서평을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 홈페이지에 멋지게 포스팅 해주신 분.
옵션 : 블로그를 여러개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제약 없이 포스팅 하셔도 됩니다.
많은 블로그, 카페에 게시하시면 높은 점수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 도움주실 일
1.서평 및 덧글 작성은 출판사 책 수령 후 2주 이내에 북스토리에 해주셔야 합니다.
2.자신의 블로그(네이버, 야후, 다음, 파란, 앰파스 등 포털 1곳이상)에 서평을 남겨 주셔야 합니다.
3.인터넷 서점(YES24,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파크, 리브로 등) 중 2곳에 댓글을 남겨 주셔야 합니다. (3줄이상 해주셔야 하고, 자신의 ID를 꼭 기재해 주세요.)

※ 주의사항
1.서평단에 가입되신 분은 책 받으신 후 2주 이내에 위의 도움 주실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2.다른 ID 두개 신청하여 두권의 책을 받아가시면 안됩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도서를 배본 받고 서평을 쓸 기회를 주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세요.)
3.회원가입시 본인의 책 받을 주소, 자주 쓰는 메일주소, 블로그 주소는 정확히 적어주셔야 합니다.
도서가 잘못 배송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꼭 한번 더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4.서평단 완료 후 스크랩 한 블로그 주소와 인터넷 서점에 댓글 달아주신 ID와 주소를 꼭 알려주셔야 합니다.
5. 이전 서평단에 당첨되신분 중 서평 미작성하신 분은 서평단 가입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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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대화> 출간
책 소식 | 2009/05/18 15:52
2009/05/18 15:52 2009/05/18 15:52
내가 중국에 관한 모든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물론 조용히 명상이라도 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와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들의 힘이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은 과거에 우리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는데 지금 그 역할은 미국이 담당(?)하고 있다. 중국이 최근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까닭에 중국어 학습이 대세를 이루고 있긴 하다. 나는 현재 우리의 언어나 사고,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미국 역시 싫어한다. 오늘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라는 루이스 팔라우 (Luis Palau)와 중국의 핵물리학자이자 무신론자이며 정치가인 자오치정(趙啓正)이 신의 존재, 우주의 기원, 인간 구원, 창조론과 진화론, 종교와 과학적 진리 등의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눈 기록집인 <강변 대화>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나눈 대화의 한 부분을 보자.

자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빛이 있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또 말하기를 낮과 밤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태양은 또 그 뒤에 창조했지요. 저는 만약에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마땅히 먼저 태양을 창조한 뒤에 다시 낮과 밤을 나누어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라우: 하느님이 빛이라는 말씀은 그분의 성결함과 거룩함, 하느님은 온전하시다는 뜻입니다. 태양은 하느님에 의해 우주의 일부분을 비추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전체 우주를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 빛이 먼저 존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곧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도 아시다시피, 저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선생은 과학자이시고, 저는 신학자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 가운데에도, 태양이 꺼지더라도 우주에는 여전히 빛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는 구절이 있고 (1장 3절) 또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1장 16절)는 구절이 있다. 낮을 주관하게 하신 큰 광명은 태양이 아닌지? 그리고 밤을 주관하게 하신 작은 광명은 달이 아닌지?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팔라우는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빛이라는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한편 자오는 하나님이 낮과 밤을 나누신 뒤 태양을 창조했다는 말을 한다. 자오가 지적한 ‘하나님이 낮과 밤을 나누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는 14절 말씀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낮과 밤이 나뉜 뒤 창조된 태양은 어떤 구절로 설명되는 것일까? 태양은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는 16절 말씀에 나오는 낮을 주관하게 하신 큰 광명을 이르는 것일까? 문제는 14절이 태양 창조를 가리키는 것이든 16절이 태양 창조를 가리키는 것이든 태양이 없으면 광합성을 할 수 없어 살지 못하는 식물이 태양보다 앞서서 11절에 창조된 것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예수교회 모임에서 간략하게 들은 기억이 난다. 모임에서 그 부분에 어떤 영적인 뜻이 있다고 말씀된 것으로 들었을 뿐이다.(이 부분에 대한 답을 시간을 내어 들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때를 기약하며 지금은 이 정도에서 그친다.)

나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하느님은 누가 창조한 것입니까?”라고 물은 자오를 몰아 세우고 싶지 않다. 자오는 과학적이지만 편협하게 보일 뿐이다. 다만 “과학자들이 진리의 정점에 이르면 반드시 하느님의 존재를 발견할 것”이며 “오히려 과학자라면 하느님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하느님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사고해서 진리를 밝혀내라” 답한 팔라우에 공감할 뿐이다.

재작년 출간된 이매뉴얼 더만의 <퀀트>라는 책에 중국 출신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정다오와 양전닝이 나온다. 그때 책을 읽으며 그들이 중국인임에도 물리학자이기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번 <강변대화>란 책의 대화자 중 한 사람인 자오 역시 사상가나 문인, 철학자 내지 종교인이 아닌 핵물리학자이다. 배우는 자세로 읽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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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천문의 해에 즈음해...
과학 관련 글 | 2009/05/18 09:49
2009/05/18 09:49 2009/05/18 09:49
올해는 갈릴레이(1564 - 1642)가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하기 시작한 지 4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천문학자 허블(1889~1953)이 우주가 팽창하는 사실을 발견한 지 80년이 되는 해이며 Apollo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는 SETI 프로젝트 제안 50년 및 메시지 송신 35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가 '세계 천문의 해'로 결정된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천문이라는 말로부터 나는 무한히 팽창하는 춥고 어둡고 황량한 공간을 연상한다. 이 춥고 어둡고 황량한 공간이라는 생각은 우주의 평균 온도가 마이너스 270도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물리나 천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10여년 전 나는 밤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을 보며 progressive rock의 한 부류인 space rock 음악을 연상했다. 음악을 들으면 들었지 연상이라니 하겠지만 이 말은 우리 은하 밖의 지적 생명체가 연주하는 음악이 Ash Ra Tempel이나 Gong, Hawkwind, Pink Floyd 등의 음악을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는 말이다. 천문이라는 말로부터 무한히 팽창하는 춥고 어둡고 황량한 공간을 연상하는 것은 space rock 음악을 들으며 우리 은하 밖의 지적 생명체의 음악을 상상하는 것보다 정서 차원에서는 삭막해진 것이다.

천문학이 우리 밖의 외계인에 대한 학문이 아니지만 물리학과 함께 천문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결과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외계의 지적 생명체들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어떻든 나는 우주인을 만난다면 그들의 음악부터 들어볼 것이다. 지구라는 아주 멀고도 먼 행성에 우주인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아주 낮을 뿐 아니라 높다 해도 그들이 우리들에게 들려줄 음악을 가지고 올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이는 발달한 외계문명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해도 우리가 외계인을 직접 만날 기회는 아주 적을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발달한 외계 문명도 빛 속도를 넘는 빠르기로 움직일 수 없음은 예외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우주선(宇宙船)을 타고 태양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항성(적색 왜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까지 가려고 해도 무려 25,000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 프록시마는 라틴어로 'next to' or 'nearest to'를 의미한다)까지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도 4.2년을 가야 하는 너무도 먼 거리이다.

프리먼 다이슨(Freeman John Dyson: 1923 - )은 태양계 안에는 발달한 외계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을 했고 천문학자 게릿 버슈(Gerrit Verschuur: 1937 - )는 “우리는 은하에서 거의 홀로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했다. 프리먼 다이슨은 외계인이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무작정 믿는 것만큼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어떤 점에서 이는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을 모두 잘못된 것이라 본 석가모니 붓다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무작정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쓰인 말일까? 물리학이나 천문학 이론을 충분하게 공부하지 않은 채 외계인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상정(上程)하거나 맹목적으로 배척(排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게릿 버슈의 말대로 우리가 은하에서 실제로 거의 홀로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순전한 기독교>를 쓴 신학자 루이스(C.S. Lewis: 1898 - 1963)는 ‘우주에서 지적인 생명체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신성한 통제와 같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 즉 우리가 타락한 종족으로부터 정신적으로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신의 섭리적) 포석이라는 것이다. 루이스는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관심을 넘어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 신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당분간 나는 루이스의 답을 넘어서는 그럴듯한 견해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얼마 전 한 외신을 통해 우주 쓰레기들(space junk/space debris)이 지구 궤도를 덮고 있는 이색적인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에 점으로 표시된 쓰레기들의 95%는 궤도상의 파편들, 즉 작동하지 않는 위성들이라고 한다. 박석재교수는 space를 ‘인간이 장악할 수 있는 우주 공간’으로 정의했는데 적어도 이 우주 쓰레기와 관련해서만은 space를 광대무변한 3차원 공간으로 정의하는 것은 덜 적합해 보인다. 즉 장악이라는 말을 반드시 첨언해야 할 것이란 말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그 외신이 공개한 사진은 선진국들의 우주 장악 실상 뿐 아니라 우주에 대한 관심과 지향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 주는 자료이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있을 외계의 지적 생명체들의 행성 주변 궤도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생각할 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과학 발달 정도와 생김새, 원소 성분 등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프리먼 다이슨의 말에 의하면 ‘외계 문명과 통신하는 인류 역사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며 ’과학이 끝난 곳에서는 공상과학 소설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왜 불가능한 것일까? 앞 부분에서 나는 외계문명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과학자들의 말과 함께 신학자 루이스의 말까지 인용했다.

루이스는 ‘우주에서 지적인 생명체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그들로부터 우리가 정신적으로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신의 섭리적 포석)이라 했지만 고도로 발달한 문명들일수록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과학기술의 파괴적 힘에 의해 함께 파멸에 이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런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 대해 궁금한 것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궁금증은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를 통해 심한 색맹과 어셔 증후군, 윌리엄 증후군과 자폐증을 앓는 네 부류의 ‘다른 정신적 세상’ 주민들이 지닌 신학(神學)은 어떤 유형의 것일까, 란 질문을 던진 프리먼 다이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나는 우리와 여러 면에서 다를 외계의 지적 생명체들은 신(神)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졌을까, 하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이 궁금증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올라프 스태플든(Olaf Stapledon: 1886 - 1950)의 <스타메이커>를 읽었다. 공상 과학 소설인 <스타메이커>가 신학자 루이스(C.S. Lewis)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이색적인 사실 때문이고 올라프 스태플든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창조주의 속성을 어떻게 이해해 작품에 활용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물론 작품에는 그런 내 관심사를 해결해 줄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알 수 없는 초자연적 능력의 도움을 받아 육신을 벗은 뒤 텔레파시로 전능에 가까운 교신을 하는 등 자유롭게 우주 공간을 유영하고 지구의 한 지역에 자리한 자신의 나라인 영국으로 귀환한 주인공의 사상적 깊이가 돋보이긴 했지만 별 다른 플롯도 없고 대화도 별로 없어 건조하기만 한 작품을 담담하게 읽고 말았다.

<스타메이커>는 내가 읽은 첫 SF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도 플롯이나 과학적 치밀함 면에서 <스타메이커>와 대동소이할 것이다. <스타메이커>에는 주인공이 초자연적 능력의 도움을 받게 된 배경이나 작동 기제(機制)에 대해 알 수 있는 작은 단서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소설 형식을 빌려 우주 과학의 주요한 부분을 망라한 <천국의 별>을 읽고 있다. 소설과, 소설 형식을 빌려 우주나 천문 과학에 대해 설명한 책의 차이는 크다. 프리먼 다이슨의 말대로 SF는 과학이 끝난 곳에서 시작되는 장르 즉 과학적 설명 없이 전개되는 장르인 반면 소설 형식을 빌린 과학서는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장르이다.

클리퍼드 피코버(Clifford A. Pickover)는 <천국의 별>에서 “우리는 산산이 부서진 별들의 유물”이며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별들이 꿈꾸지 못했던 여생을 살고 있다.”는 말을 했다. 질량이 큰 별의 내부에서는 무거운 원소들이 순차적으로 생성된다. 이런 별은 후에 초신성이 되어(초신성 폭발로) 수명을 다하는데 그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진 잔해(殘骸)가 기체구름에 섞여 새로 태어날 별이나 행성의 모태가 된다.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수소, 헬륨, 산소, 탄소, 질소 등의 원소들도 과거에 수명을 다한 어떤 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별들을 이루는 기체 구름 역시 수소, 헬륨, 산소, 탄소, 질소 등의 구성 성분을 지녔다.

이 점은 외계의 지적 생명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 공유하는 특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그 밖에 앞서 말한 바 있듯 음악이 그럴 것이다. space rock이 외계 지적 생명체의 음악을 닮았을 것이란 생각은 주관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듯 외계 지적 생명체도 산산이 부서진 별들의 잔해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란 생각은 과학을 벗어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나는 물리와 천문 우주 과학을 주로 읽으며 상상력을 위해 가끔은 SF도 읽을 생각이다. 내 읽기는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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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를 읽고...
책 읽은 후 | 2009/05/16 10:20
2009/05/16 10:20 2009/05/16 10:20
신용산님 버전의 <금강경> 해설서인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불자가 아니면서 불교 책을 읽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이번 읽기는 <금강경>에 관한 이해는 물론 오해에 대해서까지도 내 나름의 시각으로 밝힘으로써 사상의 지평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읽기라 말하고 싶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는 붓다를 신격화하고, 붓다가 설한 금강경의 가르침을 신비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간의 흐름에 조용히 이의를 제기한 책이다.

신용산님은 곳곳에서 불교 전반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해석을 가했다. 그가 내린 인상적인 해석들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불교의 27천(27天: 욕계 6천, 색계 17천, 무색계 4천 등)이 죽음 후에 가는 지옥과 인간, 그리고 천상의 어딘가에 있는 세계 등으로 뒤바뀌었다고 말한 대목이다.(60페이지, 171 페이지, 212 페이지)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에서 장소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붓다가 사후 윤회(輪廻)나 전생(轉生)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암베드카르의 주장과 비교할 부분이다. 암베드카르의 주장이 정치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면 신용산님의 해석은 교리 내적인 의미에서 나온 주장이다.

<금강경>의 가치는 보시 - 저자는 보시 중 가장 공덕이 높은 보시를 법보시라 밝혔다. -를 한다는 인식마저 벗어버린 채 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가르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저자가 인용한 여러 금강경 관련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금강경역해>를 쓰신 각묵스님을 비롯한 여러 저자들은 <금강경>의 핵심은 무아(無我)를 강조한 데에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무아(無我)인데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가란 의문이 들 것이다. 이에 대해 불교의 전통 입장은 마음의 에너지가 찰나생 찰나멸(315 페이지)하는 과정을 통해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에서 찰나생 찰나멸을 특징으로 하는 마음을 마음의 무상성(無常性) 및 무아성(無我性)으로 풀어냈다.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을 통해 ‘변증법적 사유에서 다양성은 이성적 원리의 통제 밑에 조정되어 등장하며, 결국 동일성의 구성 요소로 해소되어 버린다. 다양한 개체는 최후의 긍정을 산출하기 위해서 이용당한 후 결국 부정된다.’는 말을 했다. 변증법에서 다양한 개체들은 최후의 긍정에 참여하지만 결국 부정된다는 것이다. 불교의 마음論에서 마음은 찰나생했다가 찰나멸한다고 하지만 변증법에서와는 다르게 소멸하지 않고 기독교의 영혼처럼 ‘나 없는’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환생이나 윤회는 그것이 자아이든 그 밖의 무엇이든 업(業)을 전달할 매개체가 있어야 가능한데 붓다는 그런 매개체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말한다.(71 페이지) 일반적으로 파동을 전달해주는 물질을 매질(媒質)이라 한다. 예컨대 소리란 공기가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파동이 퍼져 나가는 현상이다. 공기가 퍼져 나가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다. 바람이 없어도 소리는 퍼져 나간다. 소리의 매질은 공기, 물결파의 매질은 물, 지진파의 매질은 땅이다. 그렇다면 무아이기에 늘 새롭게 태어난다는 마음의 파동(또는 마음이라는 파동)을 전달해주는 물질 즉 매질은 무엇일까? 아니 그런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본래에서 벗어난 여러 붓다觀들 가운데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붓다를 신(神)으로 보는 것이다. 이로 인해 등장한 것이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등의 3신설이다. 장로(長老)교단은 붓다를 신으로 보는 것에 극구 반대했지만 대중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따라 3신설이 탄생했다.(75 페이지) 한편 불교에도 가현설(假現說)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역사적 예수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에 가현설(假現說)이 등장한 것처럼 불교에도 역사적 붓다를 부인하고 신격화하기 위한 과정에서 가현설(假現說)이 등장한 것이다.(76 페이지) 칸트는 ‘순수 이성’ 은 결코 영혼과 세계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도덕적 요청에 의거해 신앙의 영역 즉 ‘실천 이성’의 영역을 개척했다. 대승에 의해 붓다가 신격화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불교는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자신을 숭배하지 말고 스스로를 의지하고 법을 귀의처로 삼으라는 붓다의 가르침과 다르게 붓다가 신격화된 사건을 보며 나는 신격화는 결국 도덕적 요청에 의거해 신앙의 영역 즉 ‘실천 이성’의 영역을 개척한 칸트의 경우와 같은 차원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는다.

붓다 입멸(入滅) 후 사리가 배분된 과정 역시 전술한 사례들처럼 일상의 비근한 예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죽은 스위스 시민권자’(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슈뢰딩거의 고양이> 366 페이지)가 누구인지 맞춰 보라면 사람들은 과연 누구라 대답할까? 답은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을 과연 어느 나라 사람으로 분류해야 할지 난처한 감이 드는데 붓다 입멸 후 자신들에게 사리를 모셔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내세운 근거들을 보면 마치 아인슈타인의 정체성에 관한 난처함을 다시 보는 듯하다. 붓다 입멸 후 붓다의 사리를 차지하려고 한 사람들은 각각 ‘붓다가 자신들의 거주지에 속한 죽림정사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마가다)는 이유와 ‘붓다와 혈통이 같다’(카필라밧투)는 이유, 그리고 ‘붓다와 같은 계급’(바이샬리의 릿차비족)이라는 이유들을 내세웠다.

물론 사리는 균등 분배되었지만 사리탑은 불상으로 발전(?)하고 만다. 나는 여기서 발전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를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는 <한글세대를 위한 불교: 원제는 Buddhism - its essence and development>에서 종교형성의 첫 단계에서 교리적, 교단적 활동의 방침을 설정해 나간 사람은 창시자가 아닌 제자 가운데 하나라는 말을 했다.(130 페이지) 콘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경우 성(聖) 프란치스코 자신이라기보다 코르토나의 엘리아스이며, 제수이트 교단의 경우 로욜라의 성(聖) 이그나티우스라기보다 라이네즈라는 말을 했다. 이 밖에 콘즈는 예수에 대한 성(聖) 바울, 마호메트에 대한 아부 베크, 플라톤에 대한 크세노크라테스 등의 추가적인 예를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초기 불교에 대한 북방 불교(대승불교)를 또 다른 하나의 예로 들을 수 있을까? 저자는 대승의 논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위배했다기보다 그 분의 가르침을 더욱 확장하고 고양시키는 역할을 해왔다는 말을 한다.(252 페이지) 이는 저자가 윤회를 살아 있을 때의 일이라 말하면서도 사후에 가는 장소와 관련한 의미로 바뀐 윤회사상이 내세의 과보를 기대하게 하는 신앙생활의 동력이 되었다고 한 것과 연관지을 수 있는 부분이다.(173 페이지) 물론 그로 인해 불교의 교세가 커지고 교리가 풍부해졌지만 기복 신앙과 힌두적인 윤회 사상에 물든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금강경은 물론 불교 전체의 하이라이트라 해서 지나치지 않을 내용을 소개할 때가 된 것 같다. 그것은 일체(一切)가 무엇인가에 대한 붓다의 대답이다.(47 페이지) 붓다는 일체를 12입처(入處)라 말한다. 즉 일체란 눈과 형상,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의식과 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낀 것을 종합하여 바깥 세상을 인식할 때 비로소 내게 세상이 존재한다는 말을 한다. 지나친 흥분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 부분과 “인식 주체가 인식 질료를 구성한다”는 칸트 이론의 연관성을 보았다.

<금강경>은 일체는 무상하고 고통이고 무아이기에 고정된 관념, 이상, 개념 등으로 번역되는 산냐<상: 相>를 가져서는 안됨을 가르친 경전이다. <금강경>은 결국 무상, 고, 무아는 공(空)이라는 이유로 허무감이나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되기에 결국 공하다는 고정 관념마저 극복한 중도의 지혜를 갖춰야 함을 가르친 경전이다.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을 맺는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인간의 사유구조를 떨쳐내는 작업은 곧 4상(四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떨쳐내는 것이다. 아상을 떨쳐 버린 사람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깨달은 사람이다. 이는 자기 사랑과 세상에의 탐닉을 극복할 것은 물론 선행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선행을 할 것을 주문하는 우리 교회의 가르침과 비교할 만한 부분이다. 자기 사랑과 세상에의 탐닉을 극복하는 것은 무아인 나를 바로 보고 집착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불교의 가르침과 상통하며, 선행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선행이란 무주상보시를 할 것(상 극복을 할 것)을 주문하는 불교의 가르침과 상통한다. 법의 속성이란 결국 무상, 고, 무아이기 때문에 자신은 실로 깨달은 것이 없다는 붓다의 선언은 배움과 실천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는 어느 단체보다 강하게 배운 대로 실천할 것을 주문하는 우리 교회의 주문과 상통하는 바이다.

긴 읽기 여정 끝에 종착지를 밟으며 나는 내가 신봉하는 종교가 아니지만 불교 특히 <금강경>을 통해 드러난 불교와의 친연성을 확인했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읽기는 힘들었지만 유익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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